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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 내용:

  • 이중언어 교육이 아이의 메타인지와 공감 능력에 미치는 영향
  • 언어 우세 전환(Language Dominance Shift)에 대한 과학적 이해
  • 이민 가정의 현실적인 '가정 내 언어 정책(Home Language Policy)' 수립법
  • 호주 내 이중언어 프로그램 지원 제도 활용 팁

호주 다섯 가구 중 한 가구가 집에서 영어 외에 다른 언어를 쓴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저도 그 중 한 가구입니다. 직장 동료한테 "왜 호주에 살면서 영어부터 안 가르치냐"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0년 넘게 이민자로 살아온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이중언어가 아이에게 주는 것들

이중언어 교육의 효과는 단순히 언어 하나를 더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연구에서 주목하는 건 메타인지(meta-cognition) 능력입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스스로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두 언어를 오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멜버른 대학교의 언어학 연구에 따르면, 두 언어를 사용하는 4~5세 아이들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더 많이 노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멜버른 대학교 언어학과). 공감 능력과 타인을 읽는 사회적 감수성이 더 발달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부분이 가장 체감이 됩니다. 저희 아이가 한국어로 마음을 표현하고, 학교에서 영어로 친구들과 놀다 집에 돌아오면, 두 세계를 오가는 나름의 언어적 유연성이 생기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이 언어-문화 연계성(language-culture connection)입니다. 언어-문화 연계성이란 언어가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그 민족의 가치관, 정체성, 세계관이 담긴 그릇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 이민자 공동체를 보면 이것이 명확합니다. "언어를 잃으면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언어와 민족 정체성이 분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이가 청소년이 됐을 때 고민을 털어놓거나 감정을 나눠야 할 순간, 부모가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만 대화한다면 그 거리는 생각보다 멀어집니다. 이것이 제가 가정에서 한국어만 쓰는 규칙을 세운 핵심 이유입니다.

이중언어 교육이 가져오는 주요 이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메타인지 및 인지적 유연성 향상
  • 공감 능력과 사회적 감수성 발달
  • 문화적 정체성과 자존감 형성
  • 장기적으로 학업 성취도(NAPLAN 등 표준 학력 평가)에 긍정적 영향
  • 가족 간 정서적 유대 강화

한국어 교육의 현실과 현실적 기대치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호주에서 태어난 아이가 한국어만 쓰는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막상 학교에 들어가니 영어가 부족해서 ELS반에 가야 했습니다. ELS(English Language Support)반이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위해 별도로 제공되는 언어 지원 수업으로, 저희 아이는 주에 한 시간씩 이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처음엔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1년도 채 안 된 지금, 아이는 자꾸 영어로 혼잣말을 합니다. 영어로 설명하려 합니다. 이게 바로 언어 습득의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언어학에서는 이를 언어 우세 전환(language dominance shift)이라고 부릅니다. 언어 우세 전환이란 아이가 주로 생활하는 환경의 언어가 점차 모든 언어 중 가장 강한 언어가 되는 현상입니다. 호주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영어가 가장 강한 언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전문가들도 이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걸 억지로 막으려 하면 오히려 아이가 언어 자체에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정의 전략은 "영어는 학교와 사회가 가르쳐 줄 것이고, 한국어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 내 언어 정책(home language policy)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정 내 언어 정책이란 집 안에서 어떤 언어를 주로 사용할지 가족이 의도적으로 정하는 방침을 말합니다. 저희는 집에서는 반드시 한국어만 사용한다는 규칙을 첫째에게 적용하고 있고, 곧 태어날 둘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것입니다.

호주 공립학교 시스템 안에도 제도적 지원이 있습니다. 빅토리아주에는 이중언어 프로그램(Bilingual Program)이 지정된 공립 초등학교가 있으며, 학부모들이 조직적으로 요청하면 학교 내에 이중언어 과정을 개설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호주 교육훈련부(Department of Education and Training)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학교 단위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출처: 빅토리아주 교육훈련부). 제가 직접 이 과정을 밟아본 것은 아니지만, 한인 커뮤니티가 있다면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경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인 기대치도 중요합니다. 이중언어 자녀를 키운다고 해서 두 언어 모두 원어민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압박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아이가 언어에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 가장 피해야 할 상황입니다. 언어와 문화가 아이에게 짐이 아닌 자산이 되려면, 강요보다는 자연스러운 노출과 긍정적인 경험이 쌓여야 합니다.

이중언어 육아는 긴 호흡이 필요한 일입니다. 당장 영어가 느리다고, 한국어가 서툴다고 조급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호주에 온 지 10년이 지난 지금 꿈에서 영어로 말하게 됐듯이, 언어는 시간과 환경이 만들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저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가 한국어를 통해 저와, 그리고 우리 가족의 뿌리와 계속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연결 고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제가 매일 아이에게 한국어로 말을 거는 이유입니다.


참고: https://www.sbs.com.au/language/korean/ko/podcast-episode/raising-a-bilingual-child-in-australia-benefits-facts-and-tips/1avyxdx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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